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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바다 너머 어딘가 (Beyond the Sea) – 믿음, 선의, 그리고 인간의 민낯

by lommy0920 2025. 7. 14.

출처:Pixabay.com 우주비행사가 공중에서 걸어가고 있다

이상과 현실 사이, 인간은 어디쯤 서 있는가?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미러 시즌 6의 「저 바다 너머 어딘가」는 단순한 SF가 아니다. 이 에피소드는 우리가 가진 믿음, 선의, 그리고 본능이라는 주제를 냉철하게 그리고 가차 없이 들여다본다. 그리고 시청자로 하여금 너무도 현실적인 공포와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신념이라는 이름의 폭력

극 중 광신도 집단은 인류의 기술을 거부하며, ‘신에 대한冒涜(모독)’이라 판단해 우주비행사의 가족과 레플리카를 잔혹하게 살해한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그들이 이 행동을 죄책감 없이 정당화하며 경찰에 자수하는 장면이다. 폭력은 자신들이 믿는 신념 안에서 정당한 ‘심판’일 뿐이다.

이 장면은 단지 드라마 속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현실 세계에서도, 서로 다른 종교나 정치적 이념으로 인해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된다. '신념'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은, 때로는 법보다 더 강력한 힘이 되며, 피해자는 침묵 속에 잊혀진다.


인간의 선의는 어디까지 유효한가?

이 에피소드의 진짜 공포는 물리적 폭력만이 아니다. 가족을 모두 잃은 우주비행사 데이비드는 정신적으로 무너진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동료 클리프는, 연민과 책임감에서 자신의 레플리카를 일시적으로 빌려준다. 인간적인 선의였다. 하지만 이 호의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데이비드는 클리프의 삶과 아내에게 정서적으로, 점차는 육체적으로 접근한다. 처음엔 상처 입은 동료를 향한 연민이었겠지만, 결국 그 선은 무너지고 만다. 타인의 몸과 삶을 점유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지는 순간,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깊게 파고든다.


선의는 배신당할 수 있다 – 현실에서도

이 장면을 보며 최근 라디오에서 들은 사연이 겹쳐 떠올랐다. 청소년으로 보이는 아이가 길에서 ‘가족에게 잠깐 전화만 하겠다’며 모르는 사람의 휴대폰을 빌린다. 선뜻 빌려준 사람은 잠시 뒤 자신의 계좌에서 수백만 원이 빠져나간 사실을 알게 된다. 악성 앱이 설치된 것이다.

이처럼 사람의 호의를 이용해 자신만의 목적을 이루려는 행동은 현실에서도 흔하다. ‘선의는 배신당할 수 있다’는 씁쓸한 진실은, 드라마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존재일까?

드라마는 이 질문을 피해가지 않는다. 내 불행이 타인을 파괴한 것일까? 아니면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존재인 것일까? 「저 바다 너머 어딘가」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시청자 스스로가 자신에게 되묻게 만든다. “당신이라면, 과연 다르게 행동했을까?”

이 드라마가 특히 무서운 이유는, 모든 비극의 배경이 현실적인 감정과 상황 위에서 전개되기 때문이다. 극단적 신념, 인간의 약함, 선의의 배신, 욕망의 폭주. 그 모든 것이 공상과학이라는 껍데기를 입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 사회의 거울이다.


1970년대 배경의 아이러니 – 고전적인 감성과 미래 기술의 충돌

드라마는 독특하게도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마치 냉전 시대의 미국과 소련이 경쟁하던 시절처럼, 인간은 여전히 우주 탐사를 향한 꿈을 꾼다. 하지만 기술은 이미 한참 앞서 있다. 레플리카를 통해 집에 있는 것처럼 현실 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 이 대체 현실과 복제된 자아는, 지금 우리가 마주한 가상현실·AI 기술과도 유사하다.

미래적 기술과 과거의 인간 윤리가 충돌하는 이 배경은, 고전적 도덕과 현대적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딜레마를 더욱 강조한다. 외적인 장치와 상관없이, 인간은 여전히 윤리적 미성숙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 더욱 슬픈 대목이다.


결국, 블랙미러는 거울이다

「저 바다 너머 어딘가」는 먼 우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지만, 사실은 우리의 이야기다. 믿음이라는 이름의 폭력, 선의를 악용하는 인간, 감정과 욕망의 복잡한 층위. 모두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실제로 마주하는 문제들이다.

이 드라마는 질문을 던진다.
“과연 당신이라면,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울을 들이댄다.
“지금의 나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