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블랙미러 시즌7의 다섯 번째 에피소드 〈율로지〉는 처음엔 단순한 ‘추억 소환’ 정도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에피소드는 점점 더 깊은 감정의 장소로 들어가, 우리가 ‘기억’이라는 것을 어떻게 소중히 여기고, 또 얼마나 간절히 붙잡고 싶은지를 정면으로 보여준다.
이야기는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낸 옛 연인의 사망 소식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남성은 그녀의 추도식에 사용할 추억 콘텐츠를 준비하기 위해 AI 서비스에 의뢰하게 된다. 그런데 이 AI는 단순히 사진을 정리하는 정도를 넘어선다. 그 한 장의 사진 속 장면을 입체적으로 복원해 당시의 분위기, 음악, 대화까지 구현해내고, 그 기억 속으로 실제로 들어가 살아보게 한다. 마치 우리가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말이다.
이 과정을 통해 남성은 과거의 추억을 다시 살아가며, 때로는 자신도 몰랐던 그녀의 감정과 속마음을 마주하게 된다. 그동안 놓쳤던 말들, 그때 알았으면 좋았을 표정들, 그리고 미처 하지 못했던 사과와 작별까지. 〈율로지〉는 단순한 회상에 머무르지 않고, '기억'이 어떻게 다시 '관계'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진과 영상을 남긴다. 누군가는 말한다. “이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서.” 하지만 정작 그 기억들을 다시 꺼내보는 일은 생각보다 드물다. 현실의 무게,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멀어져 간다. 그러나 언젠가 기술이 그 기억들을 다시 살아 움직이는 시간으로 되살려준다면, 우리는 더 자주 과거로 돌아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다시 웃고, 말하고, 함께 걸을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는 현실에서 이런 흐름을 목격하고 있다. 디지털 추모관에서는 고인의 사진 한두 장이 전시되고, 그 아래에 짧은 생전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간혹 영상이 함께 재생되기도 한다. 하지만 만약 〈율로지〉처럼 기술이 더 정교해진다면, 고인이 생전에 했던 말투, 좋아했던 음악, 그리고 평소의 표정까지도 AI가 재현해내는 날이 올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고인을 떠나보낸 사람들이 더 따뜻하게, 덜 아프게 이별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시간에 의해 달래질 뿐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 시간 곁에 기술이 함께하고 있다. 〈율로지〉는 우리에게 묻는다. “기억은 누구의 것이며, 그 기억은 어떻게 다시 사랑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