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처음 블랙미러를 접한 많은 이들이 시즌1의 첫 번째 에피소드 ‘국가의 찬가(The National Anthem)’를 본 뒤 충격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다소 자극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단순히 기괴한 상상력을 넘어 ‘대중의 시선’과 ‘권력의 진실’, ‘가족과 사회의 균형’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야기는 영국 왕실의 공주가 납치되며 시작된다. 납치범이 내건 조건은 상상을 초월한다. “총리가 생중계로 굴욕적인 행위를 해야 한다”는 것. 황당하고 비윤리적인 이 요구에 처음에는 당연히 거부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손가락이 잘린 채 방송국으로 배달된 상자가 여론을 바꿔놓는다. 공주의 안위가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오자, 국민들은 “총리가 굴욕을 당하더라도 공주를 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우리는 현실 뉴스와 여론의 파도에서 이런 반전들을 자주 목격한다. 처음에는 정의였던 것이, 감정의 물결에 따라 어느새 방향을 잃는다. 결국 총리는 압력에 굴복하고, 모든 것이 생중계되는 가운데 그는 요구를 실행한다.
그런데 반전은 또 있다. 공주는 그 직전 풀려났고, 납치범은 이미 자살했다. 그 손가락은 공주의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치밀하게 기획된 퍼포먼스였고, 진짜 희생자는 도덕도, 국가도 아닌 인간의 존엄성이었다.
이 사건 이후 총리는 지지율을 유지하며 자리를 지켰지만, 가장 중요한 가족과의 관계는 되돌릴 수 없게 된다. 아내는 그의 선택을 이해했지만, 감정의 간극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이 장면은 현대인의 삶의 아이러니를 깊이 있게 보여준다. 가족을 위해서 감내한 일이, 오히려 그 가족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드는 현실 말이다.
이 에피소드는 마치 사회 전체의 축소판 같다. 국가의 수장조차 대중이라는 거대한 권력 앞에 무력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대중은 선의로도, 잔인함으로도 움직인다. 작은 ‘좋아요’ 하나, 한 줄의 댓글이 누군가의 인생을 뒤바꿀 수 있는 시대. 그 시대에 사는 우리 모두가 공범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드는 질문. “내가 그 총리였다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도덕과 책임 사이에서 과연 ‘단호한 거절’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블랙미러는 말한다. 기술과 미디어가 확장된 시대, 대중의 감정은 또 다른 권력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새 누군가의 고통을 소비하는 관중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