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블랙미러 시즌 2의 마지막 에피소드 〈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는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설정과 복합적인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기술은 인간을 편하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이 작품은 냉혹하고 섬뜩한 방식으로 "그렇지만 그 대가를 생각해보라"고 되묻는다.
이야기는 크리스마스날 외딴 오두막에서 두 남자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이 평범해 보이는 설정은 곧 현실이 아님이 드러난다. 둘 다 현실의 인물이 아니라, 기억과 자아를 복제한 ‘디지털 의식’(Cookie) 속에 존재하는 자아들이었던 것이다.
🧠 복제된 자아는 진짜 내가 아닌가요?
블랙미러는 인간의 의식을 그대로 복제해, 마치 또 하나의 ‘나’처럼 행동하게 만든다. 이를 통해 현실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복제된 내가 모든 환경을 맞춰준다. 사물인터넷 기기와 연결되어, 내가 일어나기 전 온도를 맞추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조명을 조절하는 AI 비서로 기능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 ‘복제된 자아’도 고통을 느낀다면, 과연 그는 프로그램일까, 아니면 인격체일까?
극 중에서는 이 자아가 자신의 존재를 거부하자, “6개월간 아무 일도 주지 않는” 형벌을 내려 굴복하게 만든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고통받지만, 완벽한 고립은 그보다 더 잔혹한 고통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대목은 독방에 갇힌 죄수의 고통, 혹은 외로움에 무너지는 인간의 본성을 강하게 연상시킨다.
🧊 인간관계에서 '블록'이 가능해진다면?
이 에피소드에서 또 하나 충격적인 기술은 사람 간의 블럭 기능이다. 상대의 모습은 뿌옇게 변하고, 목소리는 들리지 않게 된다. 마치 SNS에서 '차단'당한 현실이 실제로 구현된 것이다.
이 기술은 놀랍지만 한편으론 우려스럽다. 감정적 소통을 끊고 인간관계를 단절시키는 기술이 보편화된다면, 그것이 가져올 외로움과 분노는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우리는 지금도 누군가를 무시하거나, 말 없이 단절하고 살아간다. 기술이 이를 도와줄 때, 인간은 더 무감각해질 수도 있다.
🎄 크리스마스의 형벌, 자아의 실토
이야기의 마지막 반전은 충격적이다. 크리스마스날 이야기를 나눈 것처럼 보였던 남자는 실은 죄를 숨긴 실제 범죄자였고, 대화 상대는 복제된 그의 자아였다. 현실의 그는 침묵했지만, 복제된 자아는 고립된 환경에서 결국 진실을 실토하게 된다. 이로써 기술은 물리적 고문 없이도 자백을 끌어내는 무기가 된다.
그렇다면 이 복제된 자아는 도구일 뿐인가? 아니면 인권을 가져야 할 존재인가?
🧩 기술은 해결책인가, 또 다른 문제의 시작인가?
우리는 흔히 "이런 기술이 있으면 좋겠다"고 상상한다. 하지만 블랙미러는 묻는다.
"그 기술이 과연 인간을 위한 것이었을까?"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인간의 외로움, 관계의 모순, 고립의 공포, 자아의 경계를 모두 담아낸 에피소드다. 기술이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면, 기술로 인해 인간성이 박탈되는 순간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