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블랙미러 시즌 1, 에피소드 3 "The Entire History of You"는 모든 인간이 ‘그레인’이라는 기술을 통해 자신의 시각적 기억을 100% 저장하고 다시 재생할 수 있는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 이 기술은 마치 DVR처럼 일상의 모든 순간을 저장하며, 특정 장면을 ‘리플’하여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게 해준다.
기억이 선명해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삶은 더 불행해졌다. 주인공은 아내의 과거를 의심하고, 반복적으로 기억을 돌려보며 증거를 찾으려 집착한다. 결국 그 집착은 관계의 파탄을 불러오고, 삶은 무너져간다.
잊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
드라마를 보며 다시금 느꼈다. ‘완벽하지 않은 기억’, ‘망각’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적인 선물이라는 사실을. 불완전하기에 용서가 가능하고, 잊어버릴 수 있기에 관계는 지속될 수 있다.
만약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 표정, 심지어 거짓말까지도 저장되고 언제든 재생될 수 있다면 어떨까? 우리는 순간의 실수조차도 평생을 따라다니는 감옥으로 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드라마는 이 잔혹한 기술의 디스토피아를 실감나게 그려낸다.
과거의 진실보다 현재의 신뢰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작품은 '증거'가 인간 관계에서 얼마나 폭력적인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상대방에게 “리플로 보여줘”라고 말하는 순간, 신뢰는 사라진다. 기억이 아닌 기록이 우선이 되는 사회, 법과 감시가 일상을 지배하는 시대, 그 속에서 진정한 소통은 점점 멀어져 간다.
완벽한 돌담이 아닌, 허술하게 숨 쉴 틈이 있는 돌담이 태풍을 견디듯, 관계에도 숨구멍이 필요하다. 불완전함은 약점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다.
기술의 진보, 그 끝에서 우리가 잃게 될 것들
지금도 우리는 통화 내용이 저장되고, CCTV가 어디에나 있으며, SNS에 모든 기록을 남긴다. 이 편리함은 때로는 진실을 증명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확장된다면 자신이 만든 기록에 갇히는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
“과연 우리는 그런 시대를 원하는 걸까?”
이 드라마는 편리함이 아닌, 존재의 본질을 되묻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