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블랙미러 시즌 2의 에피소드 〈화이트 베어(White Bear)〉는 보는 내내 불편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까? 왜 모두가 카메라를 들고 조용히 지켜보기만 할까? 이러한 물음은 에피소드가 끝날 무렵 충격적인 반전으로 돌아온다.
주인공 빅토리아는 기억을 잃은 채 낯선 공간에서 깨어나고,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쫓기며 끊임없는 공포 속을 헤맨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은 철저히 조작된 ‘연극’이었다. 그녀는 과거 어린 소녀의 납치·살해 사건에 방관자로 연루되었고, 그 죄에 대한 형벌로 기억이 지워진 상태에서 매일 같은 공포와 수치, 조롱을 반복적으로 겪는 처벌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단순히 "죄는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교훈을 넘어선다.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형벌은 어디까지가 정당한가?”
“벌을 받는 이의 고통을 구경하는 자들은 과연 무죄인가?”
‘화이트 베어 사법구역’이라는 이름 아래, 빅토리아의 형벌은 공포와 조롱이 결합된 쇼로 변질되었다. 시민들은 카메라를 들고 그녀의 절망을 즐기고, 그녀는 매일 극도의 수치심과 혼란 속에서 삶을 반복한다. 이는 명백히 인간의 존엄을 박탈하는 방식이며, 죽음보다 더한 형벌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우리는 이 에피소드 속 세계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SNS에서 벌어지는 온라인 마녀사냥, 대중의 분노에 휘말린 공개 조리돌림, 클릭을 위한 자극적인 범죄 재연 콘텐츠들. 우리는 누군가의 죄와 고통을 소비하며, 정당한 처벌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폭력을 만들어내고 있진 않은가?
물론, 빅토리아가 저지른 잘못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잘못이 “매일 반복되는 공포와 조롱”이라는 처벌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죄에 합당한 처벌과 비인도적인 고문 사이의 경계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블랙미러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정의를 위해 분노하는 것인가, 아니면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또 다른 방관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