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대표적인 노인분들의 집합소였던 탑골공원.
장기와 바둑을 두며 하루를 보내던 어르신들이 더 이상 그곳에 모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종로구와 경찰은 ‘관람 분위기 저해’라는 이유로 장기판을 철거하고, 노인들의 모임 자체를 금지시켰습니다. 공원은 여전히 열려 있지만, 정작 그 공간을 필요로 하는 노인분들에게는 닫힌 문이나 다름없습니다.
어르신들에게 탑골공원은 단순한 놀이터가 아니라 삶의 마지막 쉼터였습니다.
집에서는 고립감을 느끼고, 사회에서는 외면당하는 상황에서 그곳은 최소한 서로의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술로 소란을 피우는 일부와, 바둑·장기를 두며 시간을 보내는 다수를 같은 잣대로 묶어버린 이번 조치는 결국 “관리의 편의”를 앞세운 정책처럼 보입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은 언제나 무언가의 출발점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 공간을 조금 더 발전시켜 세대를 아우르는 열린 문화 공간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없었던 걸까요? 노인분들이 즐길 수 있는 작은 공연, 무상 교육, 혹은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봉사 활동과 같은 기획이 더해졌다면, 탑골공원은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도심 속 노인 문화센터’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반면 부산 동구의 작은 시도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끼리 라면’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무료 라면 공간은, 외로운 1인 가구나 어르신들에게 작은 따뜻함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라면 한 봉지를 끓여 먹는 단순한 행위 속에서도 누군가는 대화를 나누고, 누군가는 기부를 하며, 또 누군가는 삶의 의지를 다시 붙잡습니다. 심지어 가출 청소년이 이곳에서 라면을 먹다 상담으로 이어져 무사히 집으로 돌아간 사례도 있었다고 합니다.
라면 한 끼는 사소해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삶을 지탱하는 추락 방지 그물일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시 인간적인 온기를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회적 정책이 지향해야 할 본질 아닐까요?
노인은 결국 우리의 부모 세대이자, 언젠가는 우리가 맞이할 미래의 모습입니다.
그분들이 외롭지 않게, 사회와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진짜 복지이고,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서울의 탑골공원에서 쫓겨나는 어르신들의 모습과, 부산의 ‘함께 라면’에서 웃음을 나누는 장면이 주는 대비는 너무도 극명합니다. 앞으로의 정책은 더 이상 단순한 ‘정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숨 쉴 공간을 마련하는 쪽으로 향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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