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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Crocodile) – 기억을 추출하는 시대, 인간은 더 인간다워질까?

by lommy0920 2025. 7. 21.

출처:Pixabay.com 악어가 수면에 눈을 내놓고 있다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부른 비극

넷플릭스 블랙미러 시즌 4의 에피소드 3편 「악어(Crocodile)」는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스릴러이자,
기술 발전이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자극할 수 있는지를 섬뜩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다.
한 여성의 단 하나의 선택이 어떻게 끝없는 비극을 초래하게 되는지를 따라가며,
인간성과 기술, 그리고 도덕성의 붕괴를 눈앞에 펼쳐 보인다.


죄책감보다 두려움이 더 클 때, 인간은 괴물이 된다

주인공 미아는 과거, 남자친구와 함께 운전 중 발생한 사고로 사람을 죽이고 그 시신을 은폐한다.
시간이 흘러 그녀는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지만,
당시의 공범이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며 사건을 고백하겠다고 하자,
그를 막기 위해 미아는 그를 살해하고, 그 후의 모든 상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한다.

문제는 그 범죄를 ‘보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사람들까지 제거하려 한다는 점이다.
목격자였던 보험 조사관, 그리고 그 조사관의 가족까지.
미아는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끝없는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기억을 추출하는 장치 ‘리콜러’ – 진실인가, 위험인가?

이 드라마의 핵심 기술은 ‘리콜러(Recaller)’다.
이는 인간의 시각 기억을 기계 장치를 통해 추출하고,
마치 CCTV 영상처럼 재현해 낼 수 있는 장비다.

사건 조사에 매우 유용한 기술처럼 보이지만,
기억이라는 주관적인 경험을 ‘객관적인 증거’로 활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개인의 내면 깊숙한 곳까지 침해하게 된다.

그리고 충격적인 반전은 바로 여기서 펼쳐진다.
미아는 범죄를 목격했을지도 모르는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까지 살해하지만,
정작 그 방 안에 있던 기니피그가 리콜러의 기억 소스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은 몰랐던 것.
결국 경찰은 기니피그의 시각 기억 데이터를 분석해 미아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녀를 체포하러 간다.

이 장면은 섬뜩함 그 자체다.
기술은 인간의 극단적인 범죄를 자극했지만,
또한 인간의 잔혹함을 역으로 드러내는 도구로 작동한 셈이다.


기술이 범죄를 막을 수 있을까?

리콜러라는 기술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우리는 더 안전한 세상에 살게 될까?
내 대답은 “반쯤 그렇고, 반쯤 아니”이다.

이 기술은 계획된 범죄에 대비해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의 많은 범죄는 충동적이고 우발적이다.
또한, 리콜러 같은 기술이 존재하게 되면 오히려 범죄자들이 목격자 제거에 더 집착하게 될지도 모른다.

‘기억’이라는 보이지 않는 증거가 누군가의 뇌 안에 남아 있다면,
범죄자는 그 기억 자체를 제거하고자 할 것이고,
그로 인해 더 많은 희생자가 생길 수 있다.


프라이버시는 어디까지 보호받을 수 있을까?

리콜러가 존재하는 세상에서는,
우리가 본 것, 들은 것, 심지어 잠깐 스친 인상조차도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된다.
기억은 더 이상 개인적인 것이 아니며,
국가나 기업, 혹은 수사기관의 요청에 따라 얼마든지 ‘조회’될 수 있다.

이런 세상에서 ‘잊을 권리’, 혹은 ‘생각할 자유’는 여전히 보장될 수 있을까?
기억의 디지털화는 분명 기술의 진보지만,
동시에 인간의 자유의지와 사생활의 종말을 의미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 악어의 눈물은 누구의 것인가?

이 에피소드의 제목 ‘악어(Crocodile)’는
표면적으로는 북유럽 풍경과 관련 있는 동물 메타포 같지만,
실은 ‘악어의 눈물(crocodile tears)’, 즉 위선적인 후회의 상징으로도 읽힌다.

미아는 울지만, 그녀의 눈물은 진심이 아니다.
그건 삶을 지키기 위한 ‘방어적 감정’일 뿐이다.
기술은 그 눈물마저 분석할 수 있을까?

「악어」는 이렇게 묻는다.
“기술이 진실을 밝혀줄 수 있을지언정, 인간을 더 도덕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