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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 앞의 대화가 진짜 대화가 된다면 – AI로 확장되는 기억과 사랑

by lommy0920 2025. 7. 3.

출처:Pixabay.com 사람이 대화하고 있는 일러스트

 

매년 명절이나 기일이 되면 우리는 조용히 산소를 찾아간다. 묘비 앞에 꽃을 놓고, 절을 하고,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건넨다. 살아 생전의 모습을 떠올리며 “잘 계시죠?”, “보고 싶어요”, “우리 손주가 태어났어요” 같은 말을 하곤 한다. 상대는 대답하지 않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이야기를 나눈다. 이처럼 죽은 이와의 대화는 일방적이지만, 그 속에는 그리움과 사랑, 연결의 감정이 담겨 있다.

 

그런데 만약, 그 대화가 진짜 대화처럼 느껴질 수 있다면 어떨까?

기억을 담는 기술 – 디지털 유산과 AI

최근 AI 기술의 발전은 ‘디지털 유산(Digital Legacy)’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고 있다. 생전에 남긴 사진, 영상, 목소리, 문자 메시지, SNS 포스트 등을 모으면 하나의 인격처럼 구성할 수 있다. 여기에 AI가 학습하여, 그 사람이 했을 법한 말투와 반응을 흉내 낼 수 있다면 어떨까?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플루토 속 로봇은 사람처럼 기억하고 반응하며 감정을 표현한다. 심지어 전화기에서 고인이 된 사람의 모습이 홀로그램으로 나타나 말을 건네는 장면도 나온다. 이 장면은 우리가 조용히 묘소 앞에서 말을 걸던 전통적인 장면과 묘하게 겹쳐진다. 앞으로는 묘소에 설치된 작은 스크린이 고인의 얼굴을 띄우고, 마치 생전처럼 “그래, 잘 지냈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알고리즘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반응이지만, 유족에게는 큰 위안이 될 수 있다.

한국의 정서와 AI 기술의 만남

한국 문화는 유독 ‘정(情)’을 중요시한다. 떠난 이도 끝까지 기억하고 기리고 싶어한다. 그래서 우리는 납골당, 추모관에 사진을 전시하고, 생전의 음성을 녹음하거나 유언을 영상으로 남기기도 한다. 여기에 AI 기술이 접목된다면, 그리움의 밀도는 더욱 짙어질 것이다.

예컨대, 부모님 산소를 찾은 자식이 “아버지, 이번에 저 취직했어요”라고 말하면, 디지털로 저장된 아버지의 인격이 “그랬구나, 수고 많았다. 아버지도 네가 참 자랑스럽다”라고 응답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흉내가 아닌, 살아 있는 기억과 감정의 연장이 될 수 있다.

기술의 위로, 그리고 질문

이러한 기술이 실제로 상용화된다면, 과연 우리는 고인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을까? 아니면 애도를 끝내지 못한 채, 기억에 머무르게 될까?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죽은 자는 죽은 대로 보내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미 살아있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누군가를 기억하고 추억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위로를 얻는다.

AI는 감정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감정을 기억하고, 표현하도록 설계될 수는 있다. 인간이 인간을 잊지 않도록 도와주는 존재, 그것이 미래의 AI가 가질 가장 따뜻한 역할일지도 모른다.

산소 앞에서의 대화가 단지 공중에 흩어지는 말이 아니라,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시대. 그 시대가 과연 위로일지, 환상일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건, 우리는 점점 그곳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