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호기심이 만든 지옥, 그리고 그 끝
블랙미러 시즌 4의 마지막 에피소드 「블랙 뮤지엄(Black Museum)」은 단순한 미래 기술이 아닌, 기술의 윤리적 한계와 인간의 욕망이 만든 지옥에 대한 이야기다.
한 여성이 외진 사막에 위치한 ‘블랙 뮤지엄’이라는 기이한 전시관에 들어가면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세 개의 짧은 에피소드가 하나의 축으로 연결되며 인간성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 이야기 – 고통을 느끼는 의사
전시관 주인은 뇌신경 기술을 개발한 과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의사가 환자의 고통을 ‘공감’하기 위해 고통을 공유하는 장치를 이식받게 된다.
이 장치는 치료에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결국 의사는 환자의 고통에 중독되고, 나중에는 고통 그 자체를 쾌락으로 느끼는 괴물이 되어버린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기술이 ‘치료’라는 명분으로 얼마나 쉽게 인간의 본능적 어두움을 자극할 수 있는지를 본다.
단순한 호기심, 뇌의 쾌락 회로, 그리고 도덕의 부재.
결국 인간은 기술의 희생자가 아니라, 기술을 망가뜨리는 주체일지도 모른다.
두 번째 이야기 – 타인의 몸 속에 이식된 의식
다음 이야기는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여성이 남편의 몸속에 의식으로 이식되는 설정이다.
처음에는 함께 있고 싶다는 사랑의 마음에서 시작되었지만,
의식의 동거는 곧 불편함과 감정적 충돌을 야기한다.
남편은 결국 그녀의 의식을 ‘중지’시키고, 나중에는 아예 인형에 이식해버린다.
이 장면은 섬뜩하다.
감정을 느끼고 기억을 공유하는 존재가 아주 단순한 의사소통만 가능하고, 외부의 결정에 따라 ‘켜졌다가 꺼졌다가’ 하는 존재로 전락하는 것.
이건 단순히 인형이 아니라 육체 없는 유령, 혹은 디지털 귀신에 가깝다.
기억과 감정은 그대로인데, 자유 의지가 없고, 아무도 자신을 인간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그건 살아 있는 것일까, 죽은 것일까?
세 번째 이야기 – 고통 속에 갇힌 영혼
마지막 이야기는 가장 충격적이다.
살인범으로 몰린 한 남성의 의식을 뇌에서 추출해, 디지털 홀로그램으로 재현한 후
그에게 ‘전기의자’ 고통을 무한 반복시키는 형벌을 가하는 장면.
그가 실제 범인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고통을 보고 즐기며, 작은 기념품으로 그의 고통을 수집한다.
이건 더 이상 법도 아니고, 형벌도 아니다.
그저 인간의 잔인함이 기술을 통해 무한히 확장된 결과물이다.
죽지도 못하고, 끝나지도 않는 고통.
이것이 진짜 지옥이 아니면 무엇일까?
죽음이 필요한 이유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나는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죽음이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죽음이야말로 인간에게 주어진 마지막 ‘쉼’이자 권리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영원히 살아야 한다면?
그건 끝없는 마라톤을 쉬지 않고 계속 달려야 하는 것과 같다.
심지어 내가 나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어떤 기계 안에 갇혀 조종당하거나 소비된다면,
그건 존재가 아니라 형벌일지도 모른다.
자연을 거스르는 대가
블랙 뮤지엄이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한 기술 공포가 아니다.
우리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려 할 때, 인간의 윤리와 도덕이 결여된 상태에서 기술이 폭주할 때,
결국 그 피해는 인간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
그래서 그를 되살리고, 붙잡고, 기억하고자 한다.
하지만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도 사랑의 한 방식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
『블랙 뮤지엄』은 인간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기술이 구원이 될 수도 있고, 고문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삶을 고통 없는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지만,
고통을 제거한 삶은 또 다른 비극을 낳을 수 있고,
죽음을 없애고 싶어 하지만, 영원히 살아 있는 존재가 인간으로서 존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때로는 가장 인간적인 마침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기술이 발달해서 영생이 가능한다 해도 영생보다 자연스러운 인간의 죽음을 택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