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미러의 〈추락〉은 “소셜미디어 점수가 곧 사회적 신용이 되는 세상”이라는, 다소 과장된 듯하면서도 지금 우리가 이미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그려낸다. 이 드라마는 그 설정만으로도 현실 비판과 풍자를 동시에 던진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단순한 SF가 아닌, 어느새 우리 삶의 방향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졌다.
현실을 보자. 요즘 온라인 셀러, 카페나 식당 운영자에게 '리뷰 점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생존이다. 별점이 낮으면 누군가의 선택에서조차 제외되기 쉽고, 4점 이상만 되어도 우리는 마음이 놓인다. 상품 구매도, 맛집 선택도 평점과 리뷰에 의존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과거에는 긴 대기줄을 보고 맛집을 추정했다면, 지금은 손가락으로 몇 번 넘겨보고 점수와 후기로 가게의 ‘격’을 판단하는 시대다.
〈추락〉은 이 리뷰 사회가 인간 개인에게까지 확장된 극단적 미래를 그린다.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점수를 주고, 그 점수로 계층이 나뉘며, 높은 점수만이 고급 주거지 입주, 우선 서비스, 인간관계조차 결정짓는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주인공이 겪는 점수 하락의 과정이다. 사소한 짜증이나 감정 표현조차 순식간에 점수로 되갚음당하고, 그렇게 인생이 추락해가는 모습은 우리도 어쩌면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공포를 전해준다.
현실의 서비스 만족도 조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전 AS, 콜센터 상담, 택배 서비스… 만족도 평가는 고객 피드백이라는 명분 아래 있지만, 종종 억울함이 발생하기도 한다. 직원의 인격이나 일 전체가 단 몇 초의 감정적 클릭으로 평가받는 구조는 냉정하면서도 잔인하다.
하지만 〈추락〉이 무섭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런 점수 매기기가 단순히 서비스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정체성 자체를 갉아먹는다는 점이다. 모두에게 잘 보이기 위한 말투, 표정, 인맥 관리… 그것이 점점 ‘진짜 나’와 괴리된 ‘사회적 나’를 만들고, 결국은 자아가 붕괴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나는 이 에피소드를 보며 양자역학의 전자 개념이 떠올랐다. 전자는 관찰되기 전까지는 파동이지만, 누군가가 측정하는 순간 하나의 점으로 붕괴된다. 인간도 그렇다. 아무도 보지 않으면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지만, 평가받는 순간부터 타인의 시선 속에서 특정한 형태로 굳어진다. 매순간 ‘관찰당하는 존재’가 될 때, 우리는 과연 본연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추락〉은 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그 세상에 살고 있다는 깨달음을, 불편할 정도로 정직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