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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미러 ‘아크엔젤(Arkangel)’ – 아이를 지키려는 마음이 만든 역설

by lommy0920 2025. 7. 23.

출처:Pixabay.com 엄마와 딸이 얘기하고 있는 실루엣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미러 시즌 4, 에피소드 2편 ‘아크엔젤’*은 기술로 자녀를 보호하고자 했던 엄마의 순수한 의도가 어떻게 비극을 낳는지, 우리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를 묻는 작품입니다. 이 에피소드를 보며 저는 실제 주변에서 들었던 이야기와 겹쳐졌고, 기술과 양육 사이의 균형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드라마 속 싱글맘은 딸을 지키기 위해 최첨단 감시 기기 ‘아크엔젤’을 이식합니다. 아이의 위치는 물론, 심박수, 스트레스 수치까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위험하거나 충격적인 장면은 자동으로 블러(모자이크) 처리됩니다. 처음에는 안전장치처럼 보이지만, 사춘기 딸의 일상과 사생활까지 속속들이 감시하게 되면서 엄마와 딸의 관계는 균열을 맞이합니다. 딸이 연애를 하고 일탈을 시작하자, 엄마는 약속을 어기고 몰래 감시 기능을 다시 켜고, 급기야 딸의 연인에게 협박까지 하게 되죠. 결국 딸은 폭발하고, 기기로 엄마를 실신 직전까지 가격하며 가출해버립니다.

 

이 장면을 보며 저는 한 지인의 실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명문고에 진학한 아들이 성적이 떨어지고 연애에 빠지자, 어머니는 자녀의 스마트폰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앱을 설치해 감시를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로 인해 부모와 자식 간의 신뢰는 무너졌고, 아들은 부모 몰래 다른 핸드폰을 구매해 사용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지나친 개입은 결국 아이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부모에게서 더 멀어지게 만들 뿐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줍니다.

 

‘아크엔젤’에서 엄마는 딸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감시를 계속하지만, 사실은 자녀가 더 이상 '아이'가 아니게 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두려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본인은 성인으로서 연애도 하고 자유롭게 살아가지만, 자녀가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려는 순간에는 이를 용납하지 못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기술은 언제나 양날의 검입니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감시는 결국 자율성과 신뢰를 파괴할 수 있고, 우리가 완벽히 통제하려는 순간 아이는 그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큰 일탈을 감행할 수 있습니다. 블랙미러는 그 지점을 날카롭게 찌르며, "정말 이게 아이를 위한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결국 우리는 아이를 키우면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때로는 아이의 실수도, 아픔도, 실패도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크엔젤'은 그 점을 우리에게 깊이 있게 일깨워주는 에피소드입니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결말 부분이었다. 딸이 결국 집을 뛰쳐나가고, 혼란에 빠진 엄마가 딸을 찾아 거리로 나서는 장면에서, 기술이 인간 관계를 보호하는 수단이 되기보다는 되레 단절을 야기하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경고가 느껴졌다.

 

딸은 단순히 감시당했다는 것보다, 자신의 존재가 하나의 ‘프로젝트’처럼 통제되고 조작되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아이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닌데, 부모는 여전히 아이일 때처럼 통제하려 하고, 기술은 그 간극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더 크게 벌려버린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결국 ‘아이를 지키고 싶은 마음’과 ‘아이를 믿고 기다리는 용기’ 사이에서 우리는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아크엔젤이라는 기술이 없었더라도 엄마는 불안했을 것이고, 아이는 실수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실수를 통해 아이는 성장할 기회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기술이 부모의 불안을 즉각 해소해주는 순간, 아이는 더 이상 독립적인 존재가 아닌 감시 대상이 되어버린다.

 

이처럼 ‘아크엔젤’은 단순히 미래 기술에 대한 경고를 넘어서, 오늘날 우리 사회가 기술로 관계를 대체하려는 시도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