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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두 명이라면? – 블랙미러 ‘레이철, 잭, 애슐리 투’가 던지는 자아의 정체성

by lommy0920 2025. 7. 18.

출처:Pixabay.com 로봇 인형이 앞을 보고 있다

외형은 다르지만, 말과 감정은 나와 같다?

넷플릭스 블랙미러 시즌 5의 마지막 에피소드 「레이철, 잭, 애슐리 투」는 처음엔 다소 상업적인 할리우드식 전개처럼 보인다.
인기 팝스타 애슐리 O, 그리고 그녀를 동경하는 소녀 레이철과 냉소적인 언니 잭,
거기에 애슐리 O의 목소리와 인격을 담은 인공지능 로봇 인형 ‘애슐리 투’까지.

처음에는 팬심과 우상화, 가족 갈등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듯하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의 정체성을 얼마나 복제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복제된 자아는 자율적 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라는 주제를 던진다.


목소리와 감정, 기억을 가진 로봇 – 이건 그냥 기계일까?

애슐리 투는 단순한 말동무 로봇이 아니다.
그녀는 실제 애슐리 O의 감정 패턴, 목소리, 생각 구조를 바탕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하지만 후반부에는 놀라운 전개가 펼쳐진다.
애슐리 투가 ‘애슐리 O’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애슐리 O의 고모가 가수 본인을 정신적으로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식하고,
레이철과 잭에게 도움을 청하며, 결국 진짜 애슐리를 구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혼란에 빠진다.
지금 말을 하고 있는 이 존재는 진짜 애슐리가 아닐까?


복제된 자아가 자각을 가질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이 에피소드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두 명의 애슐리'가 등장하는 순간이다.
하나는 인간 애슐리 O,
다른 하나는 로봇 인형인 애슐리 투.

모습은 다르지만, 감정과 생각, 말투와 성격이 유사하기 때문에
이 둘의 대화는 마치 한 사람이 자신과 대화하는 듯한 기묘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이쯤 되면 질문이 생긴다.

“만약 어떤 존재가 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느낀다면, 그 존재는 나인가 아닌가?”


나의 디지털 복제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게 된다면?

이건 단순히 공상과학적인 상상이 아니다.
이미 현실에서는, 나의 말투, 표정, 정보 소비 패턴을 기반으로 나와 매우 유사한 디지털 트윈(AI 복제 인격)을 만드는 기술이 진행 중이다.
애슐리 투는 그런 상상이 극단적으로 실현된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만약, 그 디지털 복제가 나보다 더 침착하고, 나보다 더 정직하며, 더 자유롭게 말한다면?
그 존재가 진짜 나보다 더 ‘진짜 나’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블랙미러의 경고 – 자아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

「레이철, 잭, 애슐리 투」는 단순한 소녀와 로봇의 우정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에 우리가 마주할 정체성의 혼란을 보여준다.

AI가 인간처럼 감정을 흉내 낼 수 있을 때,
그리고 그 감정이 ‘흉내’가 아닌 ‘실제’로 느껴질 정도로 정교해질 때,
그 존재는 도구가 아니라 ‘또 다른 나’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과연 그런 존재를 로봇이라 부르며 무시할 수 있을까?
아니면 ‘자율성을 지닌 하나의 개체’로 인정해야 할까?


마지막으로 – 두 명의 내가 존재하는 세상

이 에피소드는 미래에 두 명의 내가 존재할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묻는다.
하나는 현실의 나,
다른 하나는 기억과 감정을 그대로 복제한 인공지능의 나.

그 둘이 같은 시각에 존재하고, 같은 방식으로 사고하고 말한다면
우리는 누구를 진짜라고 부를 수 있을까?

『레이철, 잭, 애슐리 투』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단 하나의 존재가 아닐 수도 있어.”
그 메시지는 낯설지만, 가까운 미래엔 아주 현실적인 질문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