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같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날씨를 확인하고, 출근길엔 음악을 고르고, 점심엔 맛집을 찾는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AI는 조용히 우리를 관찰하고 분석한다. 어느새 우리는 AI가 추천한 노래를 듣고, AI가 골라준 상품을 구매하며, AI가 제안하는 길로 길을 찾는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제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나보다 AI가 더 잘 아는 것 같아." 실제로 유튜브나 넷플릭스, 쇼핑 앱은 내가 무엇을 보고, 어떤 것에 반응하고, 얼마나 머무는지를 분석해 개인화된 추천을 한다. 처음엔 놀랍고 편리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주체가 아니라 관찰당하는 객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AI 심리 분석 서비스들도 등장했다. 내가 쓴 글이나 채팅 내용을 기반으로 기분 상태를 추정하거나, 스트레스 지수를 분석해주는 기술은 이제 낯설지 않다. 감정을 들키는 것이 어쩐지 불편하면서도,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느낌에 위로를 받기도 한다. 이것이 AI가 인간의 ‘감정’까지 관여하기 시작한 순간이다.
그러나 이 편리함은 ‘통제’와 맞닿아 있다. 내가 검색한 단어, 머문 시간, 클릭한 순서 하나하나가 데이터가 되고, 그 데이터는 다시 나를 설명하는 도구로 쓰인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AI에게 점점 더 많은 결정을 맡기다 보면, 우리는 우리의 ‘선택권’과 ‘사생활’을 조금씩 포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AI는 인간처럼 지치지도, 감정에 휘둘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때로는 인간보다 더 정교하고 객관적인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조언과 분석이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기회를 앗아간다면, 그것은 과연 진짜 도움이 되는 걸까?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AI가 나를 더 잘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이 ‘이해’일까, 아니면 ‘감시’일까? 우리는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기술을 믿되, 의존하지 않고. 편리함을 누리되, 주도권은 놓치지 않도록.
‘나보다 나를 더 아는 AI’와 함께 살아가는 시대. 우리는 이제, 나 자신에 대해 더 깊이 들여다보는 연습을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